[SeTTA] 서울시-자치구 간 문화정책 협력방안
서울시-자치구 간 문화정책 협력의 필요성
우리나라에서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라 할 수 있다. 1970~1980년대는 <문화예술진흥법> 제정, <문예중흥계획> 수립 등 문화정책의 제도적 기반을 처음으로 마련하기 시작하던 시기로, 이를 계기로 문화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지방자치제가 본격화하면서,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문화복지 구현의 관점에서 문화정책이 문화 인프라 확충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 문화정책 역시 정부의 문화정책 발전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서울은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나, 그 이면에는 인간 소외와 삶의 질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점차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2006년에 <제1차 문화기본계획(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을 수립하고 문화적인 도시환경 조성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문화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이 문화인프라의 확충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서울시에는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문예회관 등의 문화시설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문화복지 구현과 문화격차 완화 관점에서 보면, 문화인프라 확대는 큰 성과였다. 그러나 시설건립 중심의 문화정책은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며, 재정 여건이 열악한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은 중앙이 공급하고 기초가 실행하는 계층제적 구조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중앙공급 중심의 하향식 구조는 인프라 확충의 효과성은 제고할 수 있었을지라도, 기초자치단체의 문화정책 역량을 높이거나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문화인프라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문화환경 만족도가 개선되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시민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문화정책에 지역적 관점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논의들이 힘을 얻게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의 문화역량을 특히 강조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기조는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 법은 지역문화의 진흥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로 지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2016년에 수립한 <제2차 문화기본계획(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에서도 이와 같은 ‘문화정책의 지역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이 계획은 개인, 공동체, 지역, 도시, 행정 등 5개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역화 의제는 ‘지역’ 차원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을 관통하는 관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처럼 문화정책의 지역화가 강조되면서, 현재 서울시와 자치구 간 문화정책 협력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에 따라 정책적 협력을 해야한다는 당위적 차원이 아니라, 기존의 하향식 문화정책 추진체계의 한계 극복, 문화정책의 효과성 제고와 고도화를 위해 서울시-자치구 간 실질적 협력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문화시정의 관점에서 협력이 필요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 개개인의 일상 속 문화향유가 강조되면서 서울시 문화정책이 수요자 중심문화정책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시 문화정책은 서울시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직접 문화인프라와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추진하는 공급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는 서울시 문화본부의 업무계획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2011년 서울시 문화본부(당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의 주요 업무계획을 보면, ‘문화소외시민 없는 문화복지도시’, ‘일상 속 문화예술 행복도시’, ‘아시아 최고의 역사문화관광도시’, ‘문화디자인산업 육성으로 활기찬 경제도시’, ‘매력 있고 배려하는 디자인도시’를 5대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17대 핵심과제를 제시하였다. 핵심과제는 대부분 서울시가 직접 정책을 설계하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시민의 문화활동이 수동적 향유자에서 적극적 문화생산자로 변화하는 등 일상 생활 공간에서 시민이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문화활동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게 되었다. 일상 속 시민문화 향유 증대는 단순히 문화인프라 확충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문화 욕구와 행태에 부합하는 정책 설계를 요구한다. 이에 서울시는 2012년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을 시작하는 등 시민이 직접 만들어 가는 문화활동의 장을 넓히고 수요자 중심적 관점을 확대해가기 시작하였다. 문화인프라를 공급하여 시민의 문화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문화수요가 있는 곳에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것이 수요자 중심적 관점이다.
이와 같은 수요자 중심적 관점은 생활권과 마을 등 시민이 생활하는 ‘지역’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이에 2016년 서울시 문화본부 업무계획에 ‘지역 중심의 문화활동 활성화’가 정책용어로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지역밀착형 생활문화공간’, ‘지역중심 네트워킹’ 등 지역 연계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오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지역 연계 정책들을 실효성 있게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는 주체는 서울시가 아니라 자치구이다. 서울시민의 실질적 문화향유 증진을 위해서 자치구와의 협력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둘째, 도시브랜드 차원에서 ‘로컬’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문화수도 전략에서 대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장소마케팅과 도시브랜드 전략은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도시의 대표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발신하고, 이를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도시의 대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도시재생을 통해 문화시설을 랜드마크화하고 대규모 축제와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의 방법론이 활용되었다. 서울시 역시 도시마케팅을 위해 광화문광장 및 서울광장, 동대문디지털플라자, 서울성곽, 북촌한옥마을 등의 문화자원을 직접 개발 및 관리해 왔다.
*본 연구보고서는 서울연구싱크탱크협의체(SeTTA) 협력연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