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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야기

서울연구원 2019년 8월 콜로퀴움 –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말하는 “what is a city?”

등록일: 
2019.09.23
조회수: 
877
영상 : 1시간 13분
 

서울연구원은 각계 전문가들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 연구원내에서 진행하던 콜로퀴움의 영상을 2019년 5차부터 시민에게 공개합니다.

 
  • 일시 : 2019.8.27. 10:00-11:30
  • 장소 : 서울연구원 대회의실  

 

“국가는 멸망해도 도시는 살아남습니다. 도시는 국가보다 훨씬 지속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돈독히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메타시티‘는 서울이 갖고 있는 고유성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데 생각이 머문 승효상 위원장이 만들어낸 단어이다. 
 
“서울의 정체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봤는데, 천만의 도시, 역사의 도시, 수도의 도시, 무엇보다 산수의 도시, 유라시아 터미널 도시였습니다. 결국 서울이 정체성을 찾는 길은 재개발이 아니라 재생을 통한 기억의 보전이고, 랜드마크가 아니라 연대를 통한 공유의 가치를 살리는 것이고, 마스터플랜에서 부분의 자생, 그리고 단기적 완성에서 참여에 의한 점진적 과정과 생성으로 가는 것입니다. 메타시티는 계급 도시가 아니라 인문도시로 가는 길입니다. 서울의 고유성을 확보할 때 도시는 지속 가능합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우리를 바꾼다”’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1943년 폭격으로 폐허 된 영국의회 의사당 앞에서 윈스턴 처칠이 한 말이다. 
 
“저는 이 말을 잘 알고 또 이 말을 믿습니다. 부부가 닮는다는 것은 한 공간에서 행동이 바뀌고 사고가 바뀌고 결국 얼굴까지 바뀌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도하는 사람이 산골로 가는 것은 그 작은 공간이 자기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 때문 아니겠습니까? 건축은 오래 걸리지만 우리를 확실히 바꿉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왜 이렇게 갈등과 대립이 생길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난 시간 잘못 구축한 도시 공간이 상당한 원인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시티(City)’ 사회로서의 도시가 소프트웨어라면, ‘어반(Urban)’ 물리적 환경으로서의 도시는 하드웨어라고 정리한 승 위원장은 시티와 어반의 조화가 필요한데, 지난 시대 우리는 ‘어반(Urban)’ 만들기에만 집중했다고 지적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모여 있으니까 강력하게 합의한 법규가 필요합니다. 그 법규가 공간으로 나타난 게 도시의 공공영역입니다. 한 도시의 이념을 파악하려면 그 도시의 공공영역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를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도시는 어느 한 부분만으로도 전체 도시를 알 수 있어야 하고, 도시에서 한 개인이 전체를 위해 죽지 않을 수 있는 도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엔나가 지난 10년 동안 삶의 질 1위(컨설팅 기업 머서(Mercer) 발표) 인 이유는, 근본적으로 보행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보행 도시라서 물 맑고, 공기 맑으니 사람이 모이는 도시가 되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죠. 서비스가 필요하면 오전에는 차량을 다니게 하고 오후에는 보행만 하게 하는 비엔나와 같은 방법을 적용한다면 서울도 보행전용 도로로 할 수 있는 곳이 매우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서울역에서 남산까지 불과 200m 남짓이지만 철도와 길에 의해 단절되었던 곳을 ‘보행길’로 만들어 서울역 고가에서 남산공원, 남대문을 모두 잇는 네트워크를 형성한 ‘서울로 7017’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승효상 위원장은 현재 건축과 도시를 만드는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 중에 있다고 했다. 서울시 초대총괄건축가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서울연구원 2019년 8월 콜로퀴움 –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말하는“what is a city?”
초청연사 |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동아대학교 석좌교수
이로재 건축사무소 대표 
前 비엔나 공과대학교 객원교수
前 서울특별시 초대총괄건축가 
 
자막:

예, 승효상입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시간인데 건축과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여러분 귀를 머리를 어지럽히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제 잘못이 아니라 저를 부르신 서울연구원 잘못입니다.

예고드린 바대로 제목은 메타시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만든 강의인데, 이게 제목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도 간략하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건축과 도심을 만드는 시스템을 바꾸고 있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있는데 지난 서울시에서 활동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해서 확신을 가지고 바꾸고 있는 ~

서울시에서 ~로 있으면서 경험한 내용들을 말씀드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해서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상 제가 강의 초에 항상 드리는 인용한 구절이지만 하이데거가 우리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냐면 땅위에 집을 지음으로써, 땅 위에 새김으로써 존재한다, 그랬습니다.

하이데거의 말은 서양 철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전까지 하이데거 이전에는 인간의 존재라고 하는 것은 ~같은 이성적 단어에 있다고 믿어왔는데, 하이데거가 그게 아니라 구체적인 땅이라고 하는 문제를 들어대면서 여기에 집을 지어야 존재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토폴로기, 땅에 관련된 ~ 이렇게 사람도 있습니다.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이 단어는 일본 사람들이 만든 단어입니다. 19세기 일본 사람들이 서양의 과학, 문명, 사상을 받아들일 때 많은 영어단어를 한자말로 만든 가운데서 건축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조가’라는 말을 썼습니다. 집안을 만든다는 이야기로 썼는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철도역사, 이런 것 등을 조가로 설명이 안 되니까 건축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단어가 그렇게 좋은 단어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세울 건, 쌓을 축이니까 노동을 뜻하는 단어밖에 안 되어서,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의미와는 조금 생뚱맞습니다. 영어로는 아키텍쳐죠. 아크란 말은 으뜸, 처음이란 말이고, 테크는 ~인데 ~에서 테크란 말은 무엇을 쌓아서 구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의 어원이 되기도 하고 학문과 기술을 뜻하는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텍쳐라 하면 으뜸이 되는 기술, 큰 학문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를 나타내는 말이 architect인데 A를 대문자로 써서 정관사를 붙여서 The Architect라고 하면 영어 성경에는 조물주, 하나님으로 기술됩니다. 서양사람들은 건축을 굉장히 위대한 직능으로 애초부터 알았던 게 틀림없습니다. 중국 사람들도 이제는 한자를 일본사람들이 만든 건축이란 말을 쓰고있지만 원래는 영조라고 건축을 가리켜썼죠. 우리도 조선시대까지는 영조라고 썼습니다. 가꿀 영, 만들 조니까 가꾸어서 만들어낸다라고 하는게 건축입니다. 건축이란 말, 단어 자체보다는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말의 건축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가 있겠지만 가장 좋은 말이 저는 우리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짓다라는 단어입니다. 집은 세우는게 아니라 짓는 것입니다. 짓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쓰냐면 시를 짓거나, 글을 짓거나, 밥을 짓거나, 농사를 짓거나, 옷을 지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재료나 ~를 가지고 자기 사상과 이념을 통해 솜씨를 거쳐서 새로운 ~로 창조해내는 행위가 짓는 행위입니다. 건축이 대단한 사유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창조적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은 짓다라고 하는 단어에서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건축이라는 의미가 우리 삶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이 되는게 분명하고 이것을 간파한 윈스턴 처칠마저도 1943년 영국 ~이 나치에 의해서 폭격되었을 때 폐허의 현장에 서서 이 말을 했던 겁니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바꾼다는 이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말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건축은 우리를 바꿉니다. 그런데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고 한 까닭이 서로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살게 되면서 그 공간의 영향을 받아서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고, 사고가 바뀌고 결국 ?까지 바뀌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수도하는 사람이 굳이 산골에 있는 ~를 ~서 수도하기를 원하는 연유가 자꾸 ~한 공간이 자기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건축은 오래 걸리지만 우리를 확실히 바꿉니다. 좋은 건축에서 살면 좋은 사람이 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왜 하나같이 말년에 비참한 꼴을 하고 여기서 물러날까 저는 이 건축이 가지고 있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빌리면 근대적 문화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건축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건축이지만 시대착오적인 방법으로 지어졌죠. 굉장히 봉건적인 형태고 집 자체도 목조건축이어야 되는데 그 규모가 커서 그리 짓지 못하니까 콘크리트로 목재인 냥 속여서 만든 집이 이 집입니다. 그러니까 진정성 없고 반시대적인 삶을 사는 한, 윈스턴 처칠 빌리면 그 삶이 허위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건축은 사람을 바꾼다고 하는 사실을 안 것은 대부분의 위대한 독재자들은 굉장히 잘 압니다. 이집트 파라오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의 왕들과 황제들과 전군?들이 다 건축을 통해서 민심의 형태를 바꾸어왔습니다. 그 중에서 히틀러는 실제로 건축을 스스로도 한 사람이고 원래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비엔나 ~ 아카데미 시험을 3번이나 쳤다가 떨어져서 군대를 가서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건축에는 굉장히 해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군?을 잡자마자 ?슈페어?라고 하는 아주 젊고 유능한 건축가를 최측근으로 기용하면서 자기를 신격화하게 되는데 동원하게 됩니다. 여러분 전당 대회장 같은 것을 만듭니다. 군중을 수십만명을 몰아넣고 밤중에 빛을 하나 주지 않다가 히틀러가 등단하게 되면 서치라이트 330개를 쏘아올려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환상에 빠져들게 만들어서 하일 히틀러를 연호하게 만드는 풍경을 만드는 작업을 늘 상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시도했던게 베르뉴이아? 라고 하는 베를린 개조작업입니다. 제3제국을 표방한? 사람이니까 로마식의 건물로 도시를 만듭니다. ~에서 ~까지 6km가 되는 길을 직선으로 만들고 주변에 로마식 건물을 많이 실제로 세웠습니다. 마지막 목표가 저 위에 있는 인민대궁전입니다 무려 높이가 300미터 diameter가 27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건축이고 15만명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서 ~ 전당대회장같은 풍경이 열어서 상시적으로 나타내도록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원된 단어들이 저는 돔 하나의 세계에 있다고 하는 것이고 이 돔을 지지하는 기둥들, 군중들, 인민들의 ~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건축은 실제로 지어지지 않고 기록으로만 남는데, 이 건축이 부분적으로 실현된 데가 몇 군데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여기서 실행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이런 류의 건축 행해지는 한 윈스턴 처칠 빌리면 좋은 정치가 될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이 건축은 원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4명의 건축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아무도 자기가 설계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원래는 이렇게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설계는 이 안에 있는 ?층짜리 건물이 데 이 건물이 오피스빌딩처럼 밖에 안보이니까 이 앞에 건물과 관계없는 기둥을 ? 만들죠. 이 전체를 밖의 이 모양은 전부 다 가짜고 장식일 따름입니다. 이 건축을 가지고 청와대에 들어왔더니 청와대에서 볼펜으로 그려줬다 합니다. 권위있어 보인다는 결과였습니다. 이 건축은 보통의 돔하고는 가장 중요한 대의회장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갑자기 생긴 것이니까 그런 시설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소위 장식일 따름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 디즈니랜드 요술궁전 같은 저런 류의 건축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진정성이 있을까? 저는 지극히 의문이 듭니다.

도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들은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도시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두 단어가 있죠. 시티와 어반이 있습니다. 이 ? 뜻은 사실 다릅니다. 시티는 사회에 가까운 것 말이고 어반은 물리적 환경에 가까운 말입니다. 시티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이야기고, 어반은 하드웨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시가 되려면 이 2개가 한꺼번에 같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가 그동안 지난 시대에 만들었던 도시가 과연 시티를 만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반만 만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데에서 우리 지난 시대의 도시 만들기를 반성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농촌이라 하는 것은 혈액으로 결성된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법규가 없어도 천륜과 인륜으로 운영이 됩니다. 도시라고 하는 것은, 도시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 아닙니까? 자기 개인의 이익을 구하기 위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 도시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 모여 있으니까 이 익명의 공동체가 운영이 잘 되기 위해서는 아주 강력한 서로 합의한 법규가 필요합니다. 법규가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 법규가 공간으로 나타내는게 도시의 공공영역입니다. 한 도시의 이념을 우리가 파악하려면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공공영역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를 살피면 그 도시의 이념을 우리가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공공영역은 과연 어떻게 조직되어 있을까 하는게 오늘 이 강의의 초점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극명하게 표현한게 이 그림이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14세기에 그려진 암브로조 로렌체티라고 하는 르네상스의 화가가 시에나 구 시청사 2층에 그린 프레스코화입니다. 왼쪽이 도시고 오른쪽이 농촌이겠죠. 농촌에 있는 사람 오른쪽 아래 그림처럼 굉장히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성벽으로 쌓여있는 도시 안은 굉장히 화려하고 굉장히 분주합니다. 도시에서 빠져나간 사냥을 떠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금방 보면 이 그림의 이름이 좋은 정부의 좋은 도시라고 하는 그림인데 보면 도시는 농촌에 대한 지배자로서 농촌은 착취대상입니다. 그러니까 도시의 성벽을 뜻하는 bourg라고 하는 단어가 bourg 안에 사는 사람을 브루주아라고 칭해서 오늘날도 착취계급의 대명사처럼 쓰는 게 이런 류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라고 하는 겁니다. 과연 14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이 오늘날도 과연 유효한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도시는 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만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발굴된 것이 만년 최고의 어떤 것이 만년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 ~라고 하는 곳에서 도시의 흔적이 나타났다고 하고, 비슷한 시기에 9천 년 전에 ~의 ~에서 이 그림이 발견되어서 발굴해보니까 이런 류의 도시가 있었다는 겁니다. 지붕 위는 이 도시의 이 마을의 공공영역이고 일하고 놀고 하다가 지붕에 뚫려져 있는 구멍을 타고 내려가면 개인의 영역입니다. 지금은 도시는 영역 흔적만 남아있지만 9천년전의 모습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중국의 싼둥에 있는 마을입니다.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무려 7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평지에 땅을 파서 마당을 두고 마당 주변에 흙을 파서 개인의 방들을 만드는 이 형태, 7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니까 이 도시의 삶이라고 하는 게 진보한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시로서 시스템 갖고 있다하는 것은 ~가 최초라 그러죠 ~의 고향입니다 시스템이라고 하면 영역이 있고 그 안에 왕궁도 있고 신전도 있고 주거지역, 이런 류의 도시의 용도에 관한 구분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라고 불리는 피라미드가 있는데, 지금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하구에 있는 주거지역입니다 이층의 흙집으로 되어 있는데 발굴한 후에 평면으로 그린 겁니다. 굉장히 치밀합니다. 제가 ~로 칠한 것을 보시면 이 것은 큰 집도 있고 작은 집도 있고 ~도 있고, 이런 류의 빈부막론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굉장히 섞여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도시는 6천 년 전의 도시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서도 이루지 못하는 소셜 믹스를 6천 년 전의 이 도시에서는 이루고 살았다 과연 우리 사회가 6천 년 전보다 진보한 것일까 하는데 대해서 우리가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은 마치 르 코르비제가 설계한 20세기의 바우하우스처럼 보이지만 무려 5천 년 전의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 만들 때 지었던 노동자 숙소의 도면입니다. 마치 원룸 아파트를 그린 도면처럼 보입니다. 저는 건축이 반드시 진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5천 년 전에 20세기 모더니즘에서 이루려했던 꿈이 이미 5천 년 전 실현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폼페이 그림입니다.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도시가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일거에 서기 79년도에 멸망했습니다. 32년 전에 이 도시를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만 명 살던 도시였는데 제가 생각하는 도시로서의 모든 요소를 이미 2천 년 전에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만드는 도시보다 훨씬 더 이상적인 도시를 실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상하수도 인프라가 완벽했고요, 고차분리가 되고 있었고, 여기에 잘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못사는 사람도 같이 섞여 살았고, 빈부/신분의 고조 구분하지 않고 다 섞여 살았고요. 신전, 왕궁뿐만 아니라 도시로서의 시민들이 매일 축제처럼 즐길 수 있었던 문화시설, 위락시설, 그리고 목욕시설 즐비했던 도시입니다. 로마시대의 리조트 타운으로서 역할을 했지만 이 도시는 매일매일 축제였던 그런 도시였을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런 도시가 왜 멸망했을까? 혹시 더 진보할 방법이 없어서 멸망한게 아닐까 하는 억측까지 해야만 했던 심정이었습니다.

르네상스 때 이 도시가 나타났습니다. 팔마노바라고 하는 도시입니다 베니스에서 북동쪽으로 100km 가면 있는 도시인데, 이 도시의 이념은 설명드리지 않아도 여러분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외부가 다 적이라서 해저를 파고, 높은 성벽을 쌓고, 안에는 굉장히 치밀하게 조직해서 정가운데는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가 사는 집이 있는 단일 중심의 봉건도시입니다. 중심에서 주변부로 향할수록 계급이 낮은 사람이 사는 아주 위계적인 도시입니다. 이 도시가 실제로 이렇게 건설이 되었고 근대화 통해서 성벽은 없앴지만 계급도시, 봉건도시의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문제는 이 도시가 르네상스 때 이 도시 하나만 발전된 게 아니라, 유행처럼 이상도시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에 걸쳐서 세워졌다는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스웨던에까지도 이 도시가 세워졌으니까, 이런 변방지역에도 세워졌으니까 얼마만큼 그 열기가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1516년에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라고 하는 책을 발간합니다. 소설책입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토마스 모어가 만든 말입니다. 유와 토피아를 합성시켜서 만든 말입니다. 토피아는 토포그라피의 어원이니까 땅이나 장소라 알긴 아는데 유가 라틴어에 의거하면 굉장히 수상한 단어입니다. 이와 오를 붙여서 이유/오유 하면 발음은 똑같이 유로 발음되는데 뜻은 반대라고 합니다. 이유는 좋다, 오유는 아니라고 하는 뜻이 되어서 이와 오를 빼서 유라 하면 유토피아는 좋기는 좋은데 불가능한 것, 이게 오늘날 이상형으로 번역하는 유토피아입니다. 그 소설책에 나오는 그림이 이 그림입니다. 이게 리얼리티 세계입니다. 유토피아는 섬처럼 떨어져있고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있는데 출입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감시는 망루가 있어서 겨우 빗겨서 들어가면 곳곳에 감시탑이 있고 이걸 다 거쳐서 들어가면 정가운데는 이 유토피아를 다스리는 영주의 성채가 있는 단일중심 도시가 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의 이미지였습니다. 사실 이 책은 그 당시 유행했던 유토피아의 열풍 이상도시 열풍을 비판하기 위해 썼지만 오래 자극이 되어서 이런 류의 도시계획도가 범람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굉장히 많죠. 그리고 많은 부분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림의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개념은 같습니다. 주변부를 완강한 성채로 조직하고 그 안에는 굉장히 치밀하게 계급적으로 위계적으로 공간을 형성해서 정가운데는 이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가 있는 단일중심의 봉건도시, 이게 르네상스인들이 열망했던 도시, 공통적 특징입니다. 또 하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굉장히 기하학적 도형 아닙니까? 기하학적 도형은 인간의 머리에서 만들어지는 도형입니다. 이런 유추가 가능합니다. 적어도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도시를 만들 때 머리에서 먼저 만들고, 이 머리에서 만든 기하학적 도형을 실현하기 위해서 땅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런 기하학적 도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평지에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진 계획도시는 전부 다 평지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산이 70%이상인 우리나라 땅에서 평지는 전부 다 경작지로 쓰여야 했던 우리의 현실에서 땅을 집이나 마을을 산 밑의 양지바른 경사진 곳에 지어야 했던, 우리의 현실하고는 너무 출발점이 다른겁니다. 우리는 땅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도시가 생각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었고 ~ 도시 만드는 방법이 너무 틀린 방법이라는 겁니다. 이런 류의 도시만들기는 평지, 단일 중심, 근대 과학과정을 통해서 여실히 이어집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이런 ~의 ~도시 보시면 단일중심의 이런 도시 혹은 심지어는 20세기 도시계획에 굉장히 영향 준 ~ 전원도시의 모습 인구가 프랑스시민혁명과 영국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이 되었을 때 분산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하나하나의 도시들은 전부 다 단일중심의 그러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가운데 도시를 메트로폴리스라고 칭합니다. 메트로폴리스라고 하는 개념은 여러분 사실 알지만 메트로는 마더, 마더시티 어머니의 존재는 생육과 번성에 상당부분의 어떤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메트로폴리스라고 하는 말의 자체가 번창, 팽창, 성장을 전조로 한 이름이 메트로폴리스에 관한 단어입니다.

르 코르비제가 그린 파리를 대조하는 도시의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면 아무 감동이 없지만, 1924년에 이 그림이 발표가 되었을 때 파리사람들을 비롯해서 서양사람들은 굉장히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런 류의 도시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파리는 예나 지금이나 7~8층짜리 건물이 빽빽한 가운데 있습니다. 1924년도 파리의 실상은 도시적 상황이 굉장히 열악해서 빛과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암울한 도시였고 공해가 굉장히 심각한 도시였습니다. 이 집들을 다 허물고 ~ 집과 집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빛과 바람을 들어오게 하고, 녹지를 심고, 야외에서나 즐길 수 있었던 피크닉을 도시 내에 와서 즐기게 하자고 한 이 발상은 그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부아쟁 계획이라고 하는 파리 개조계획입니다. 거미줄 망처럼 되어있는 조직을 가졌는데 지우개로 지우듯이 전부 다 백지화시키고 60층 짜리 아파트를 건립해서 살자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르 코르비제의 이 생각은 그 당시 모더니즘의 시대정신과 맞물려 마스터플랜이란 이름으로 그 이후 지어지는 모든 도시계획의 전범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잘 아시고 계실 겁니다.

르 코르비제가 만들었던 생잰?이라고 하는 왼쪽의 도시입니다. 오른쪽은 분당의 도시입니다. 코르비제 이후부터 도시를 그리는 방법이 굉장히 틀렸습니다. 색이 칠해졌습니다. 그 이전의 도시 지도는 색이 칠해져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 칠은 지도가 예쁘게 보이라고 칠한겁니다. 코르비제 이후의 도시는 굉장히 권위를 갖고 있어서 빨간색으로 칠해진 것은 상업지구고, 노란색은 주거지구고, 보라색은 공업지구가 되어서 이 색이 칠해지는 순간 땅값이 달라지고 ~가 틀려서 토지가 등급을 갖게 됩니다. 도시의 도로도 고속도로부터 간선도로, 자동차전용도로 등등해서 도로 자체에 굉장히 계급을 둬서 속도 제한을 두고 도로변에 짓는 건물의 종류와 높이와 형태까지도 제한을 둬서 철저히 계급화 시킵니다. 도심을 놓고 구도심을 놓고 변두리를 놓고 위계화 시킵니다. 도시에 있는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도심 중심 산업시설에 오게 되면 몇 년 만 살게 되면 주눅이 드는, 이런 도시민들을 계급화 시키고 정형화시키는 이 작업이 이런 류의 도시계획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도시들이 이렇게 건설되었습니다. 이 도시에서의 삶이 ~, 청사진으로 그려진 삶이 행복해졌을까. 완성된 이후의 도시들에 대해서 도시사회학자들은 대단히 의문을 표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1957년에 건립된 프루이트 이고라고 하는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건립된 3000세대 가량의 주거단지였습니다. 미노루 야마사키라고 하는 일본계 유럽 건축가가 설계했습니다. 이 아파트단지가 건립될 당시에 미래세계를 위한 완벽한 세상이라고 칭찬을 한 매체가 ~했습니다. 철저한 코르비제 이론에 바탕을 두고 건립되었고 여기에 목적 블록 공간을 구분했습니다.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흑인과 백인 마저도 철저히 구분한 단지였습니다.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게 목적별로, 정해진 대로 살지 않습니다. 노는 공간에서 밥을 먹고 싶기도 하고 밥 먹는 공간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 지키는 자와 지키지 않는 자끼리의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여기에 급기야는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 도시의 강력범죄라고 이름붙은 형태의 범죄들이 연이어서 벌어지게 되어서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2대밖에 없을 정도로 이 도시는 세인트루이스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집단의 소굴로 변하는데 17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참다못한 세인트루이스 시 정부가 다이너마이트로 전체를 폭파하고 없애고맙니다. 이 폭발이 일어난 순간 ~라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가 ~하면서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순간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모더니즘은 우리 20세기 초의 시대정신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과학이라고 하는 이름 하에서 분류하고 재단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성, 연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였고 그 무시한 결과는 처참한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거의 폐기되기시피한 이런 류의 계획이 1970년대에 한국에 들어옵니다. 같은 땅의 지도인데 서울을 전혀 그리는 방법이 70년대부터 틀려졌습니다. 왼쪽이 19세기에 그려진 서울 지도고, 오른쪽이 20세기의 서울 지도입니다. 왼쪽은 산과 계곡, 물길들이 아주 잘 보이고 양지바른 터가 보입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마을임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에 오른쪽에 그려진 지도는 산과 물길, 계곡은 다 없어지고 사라지고, 붉고 푸르고 이런 색깔 구분만 있고 붉은 선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여서 여기서 삶은 뭔가 불순한 업무가 잔뜩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제가 너무 ~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도시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풍경이 이 현실입니다. 왼쪽은 19세기까지 있었던 서울의 모습입니다. 100년 전 모습입니다. 마포의 모습입니다. 산과 물과 건축이 하나의 풍경화처럼 이루어져 있습니다. 불과 100년 전 모습입니다. 오늘날 21세기의 모습입니다. 제가 사는 대학로인데 지금 조금 틀려졌긴 하지만, 보시면 서민 아파트, 단독주택 분들, ~ 적어도 이 3개의 집단이 결단코 타협할 수 없는 전선을 형성한 채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 왜 갈등과 대립이 많을까? 저는 우리가 지난 시대에 잘못 건축한 도시 공간에 대부분 원인이 있다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얘기를 조금만 더 해드리면, 르네상스는 인문/예술이 굉장히 발달된 시기인데,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투시도법이라고 하는 게 르네상스 때 만들어졌습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라고 하는 피렌체 돔을 건립한 건축가가 창안한 건물인데,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보는 방법입니다. 만약 우리가, 여러분도 다 아십니다만, 투시도법에 동의를 한다 그러면 이 그림이 주장하는 세계관에 우리가 동의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이 투시도법의 세계관이 뭔가 하면, 여기에 한 사람이 서있습니다. Standing Point에 서있는 사람이라 그러는데, 이 사람 눈으로 이 공간의 선들이 다 소실되어서 들어옵니다. 이 공간은 이 앵글은 하나밖이 아니라 이 수없이 많은 다른 앵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앵글만은 이 사람만 볼 수 있는 앵글입니다. 투시도라고 하는 것은 남하고 공유하지 못하는 광경을 그린 게 투시도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인데 한 사람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사람의 눈으로 본 광경이 이 그림입니다. 투시도라고 하는 것은 남하고 공유하지 못하는 세계라고 하는 겁니다. 서양 사람들이 이 투시도에 열광하는 이유가 자기의 독점적 세계를 ~한 결과라고 하는 겁니다. 존 버거라고 하는 영국의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 사람이 쓴 책 중에 하나가 Ways of Seeing 사물을 보는 법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시작이 우리가 투시도법을, 투시도에 익숙한 다음부터 우리가 얼마만큼 세계를 왜곡하게 보게 되었는가 하는 성찰에서부터 그 책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그림 그리는 방법에 투시도 말고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

우리 선조 중에 한 사람이 참 특별한 방법을 하나 그렸습니다. 19세기에 그려진 민화입니다. 이 그림은 8칸의 책장을 그린 그림입니다. 하나의 그림인데 하나의 그림이라 하면 투시도법에 의하면 한 점으로 소실점이 다 모여야 되는데 이 그림은 각 칸마다 자기의 소실점이 다 따로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칸에 놓여져 있는 사물들은 그 공간의 중심점이 향해 가는게 아니라 자기의 중심을 향해서 제 다 뿔뿔이 나아가고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같은 그런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그림은 그림 그리는 자가 보는 세계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면, 이 그림을 본 이름 모를 우리 선조는 세상에는 중심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물과 공간이 자기의 중심이 따로 있다고 하는 걸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결단코 이런 그림 그려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이 그림을 보았을 때 굉장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주의 시대에 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이 그림과 같아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단일중심의 공간에 사는 게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공간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공간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그런 도시 구조를 우리가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체계 외에도 우리가 서양화 ~ 다른 서양의 ~ 굉장히 많은 다른 류의 공간 체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류의 공간체계입니다. 모로코에 있는 마라케시라는 도시의 공중사진입니다. 부분적이긴 하지만 전부를 다 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히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굉장히 질서가 있습니다. ~ 한 10채 정도의 집들이 이렇게 모여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10채 정도 집들은 어떻게 모여있냐면 집 하나, 우물하나, 이 두 개의 생존에 필요한 공공시설을 가운데 두고 10채가 모여서 그 스스로가 하나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게 증식이 되어 전체를 이룬게 이 전체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는 한 부분이 없어진들, 덧대어진들, 이 도시는 프랙탈같은 구조가 되어서 지속이 되어집니다. ~라고 하는 철학자가 민주주의의 도시에 관해서 얘기하기를, 민주주의 도시라고 하는 것은 어느 한 부분에 가더라도 그 부분만으로도 전체 도시를 알 수 있어야 된다 하는게 민주주의 도시라 하면서, 한 개인이 전체 이익을 위해서 죽지 않을 수 있는 도시. 부분이 전부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도시가 민주주의 도시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도시가 저는 다름 아닌 바로 이 마라케시의 모습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모로코는 이슬람의 도시입니다. 이슬람의 교리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모두가 모두에 평등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많은 도시들이 같은 형상을 보입니다. 페스라는 도시인데 제가 4번 방문했는데 무려 1200년 전에 형성되었던 도시입니다. 1200년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도시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도로는 어떤 곳은 몸을 비틀어야 통행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집안은 항상 밝고 명랑합니다. 여기서 인터넷, 위성 티비 안 될 리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넓은 곳은 모이는 광장이 되고, ~~~ 가운데 있는 것은 공장지역이 되고, 아주 정갈한 집을 하나 지어놓았더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 카라윈 대학이 이 곳에 있습니다. 이 도시는 1200년 전에 도시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존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1000년 이상은 너끈히 지속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지속가능한 광장이 시멘트에 녹색 페인트 칠한다고 결단코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공간구조가, 도시구조가, 우리의 삶을 한 사람의 삶이라도 삶의 존엄성을 빛낼 수 있는 도시가 지속가능한 도시요, 지속가능한 건축이 아닐까 여기에서 확실히 배울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도시를 모로코까지 가볼 필요가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도 사실 있습니다. 건축가나 도시계획가가 설계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만든 도시 ~입니다. 소위 우리가 달동네라 부르며 배척하는 동네입니다. 우리 달동네는 모로코의 평지에 세워진 도시보다도 산티발에 세워지기 때문에 그 공간이 다이나믹합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진 게 굉장히 적죠. 그러니 많은 부분은 이웃과 동네사람과 나누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나누는 삶의 공간이 길입니다. 달동네의 길은 통행만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 모여 헤어지고 자기들의 ~ 익히는 공간 달동네의 길들입니다. 그래서 아주 길들이 기기묘묘합니다. 곧은길이 하나도 없습니다. 휘어지다가 넓다가 좁다가 커지다가 꼬꾸라지다가 하는 아주 기기묘묘한 ~ 달동네의 길이 있어서 이것은 어느 건축가도 이런 류의 마을을 설계할가 수 없는 그런 동네입니다. 제가 전에 살았던 왼쪽 ~ 달동네 모습과 세계 사람들이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칭하는 산토리니 동네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지 저는 색깔말고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제가 눈이 올 때 올라가서 ~ 달동네를 찍었어야 똑같음을 보여드리는데 없어서 유감입니다만, 특히 ~ 골목구조는 우리 달동네가 월등히 아름답고 월등하게 다이나믹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산토리니는 이미 주민들이 하나도 살지 않습니다. 관광객들만 들끓는 곳이고 우리 달동네는 여전히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그 진정성이 더 큰데, 우리 달동네는 항상 이렇게 재개발에 의해서 붉은 깃발이 꽂히고 이 아름다운 동네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이것은 저는 건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범죄적 행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달동네는 재개발되어야 됩니다. 사는 동네가 인프라가 부족하고 집 자체도 열악합니다. 그렇지만 이 동네가 가지고 있던 그 공간적 본질을 지키고 개발할 수 있었으면 산토리니보다 아름다운 동네를 우리가 만들 수가 있었고 우리 공동체를 와해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서울은 세계적으로 여전히 아주 강력한 도시입니다. The Mori Memorial Foundation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작년에도 세계 6위의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습니다.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삶의 질을 조사해보면 MERCER 컨설팅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같은 해에 서울은 76위에 마크되어있습니다. 돈은 세계 도시 중에서 6등으로 잘 버는데 삶의 질은 76위라고 하는 이 unbalance한 상태가 무엇에서 비롯될까? 저는 단연코 우리가 잘못 만든 도시구조에 대부분의 원인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혹은 경제지수와 행복지수는 대부분의 지수가 같이 동행하는데 우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돈은 잘 버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잘 살아보세’라고 하는 혁명적 구호를 들어야 되고 오늘날도 경제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데 왜 돈 버는지, 왜 돈 벌어야 되는데 모르면서 돈만 버는 벌레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 모든 게 혹시 잘못 도시계획을 해온 바가 아닌가하는 겁니다. 서울 2020/2030/2040을 계획한다고 합니다. 이 계획을 보면, 2020 계획을 보면 아주 거침없이 나가는 저런 류의 화살표, 이게 의미하는 바는 팽창, 성장밖에 더 있습니까? 이런 류의 도시로는 서울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그림입니다. 다행스럽게도 2030?에서 저 기세 모르게 뻗쳐나갔던 화살표가 다소 꺾입니다만, 여전히 저런 기세는 팽창하겠다고 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자세를 갖고있는 한 결단코 우리의 삶이 성장과 팽창에 휘몰려서 행복할 리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류의 개념은 이게 멀리 가면 로마시대 때의 캠프?의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대 때 로마가 세계를 정복할 때 캠프?를 설치합니다. 캠프라고 하는 것은 필요 없으면 걷어가야 하니까 아주 단순한 도시구조를 가집니다. 왼쪽 그림이 캠프의 다이어그램입니다. 십자가를 만들고 가운데에 중앙부를 포럼을 설치하고 주변부를 담장을 두르면 캠프가 됩니다. 이게 오래 지속되면 오른쪽에 있는 아프리카 팀가드처럼 도시로 변하고, 이런 류의 도시로 되어있는게 로마캠프가 원도심이 되어 있는게 런던의 시티지역이고 파리의 시테란 지역이고 비엔나의 ? 등등이 다 로마캠프가 주둔해서 오늘날까지 지속된 도시의 원도심입니다. 이런 류의 도시가 캠프는 평지에 설치하는게 마땅하니까 평지의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지금 도시는 2000년동안 도시민의 삶이 덧대어져서 도시의 정체성을 지금은 갖게 되었습니다만. 옛날에는 정체성이 있었을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서양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도시에 관해서는 땅에 관련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도시 구조 자체에 관해서만 생각합니다. 20세기 파울로 솔레리같은 사람이 제안한 도시를 보면 도시는 드디어 땅을 배경으로 서는게 아니라 하늘을 배경으로 섭니다. 혹은 1970년대 ~주의자들이 제안한 도시를 보면 땅은 ~ 아무 관계없습니다. 그냥 아주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살자 하는 게 20세기의 서양도시학자들의 얘기입니다. 혹은 아키그램이 제안한 걸어다니는 워킹시티 혹은 인스턴트 시티, 도시구조는 항상 지속하지 않는 부품같은 것이라고 하고 이런 기계적 구조에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공상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이 공상적인 생각은 서양 사람들의 도시에 관한 생각을 내내 지배했던 그러한 생각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기록만 보면 이 기록이 ~ 아니라 일부분이 실현된 데가 두바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상적인 야자수 그림도 그릴 수 있는 데가 두바이입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의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 전부 다 두바이를 담자고 선언문까지도 붙였던 것도 기억됩니다. 그러다가 두바이가 디폴트에 빠져가지고 다행히 내려놨죠. 저는 두바이는 이런 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두바이 땅이라고 하는 것은 사막입니다. 바람 불면 뭐 하나 남지 않는 사막입니다. 무엇을 그린들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두바이는 언젠가는 다시 이런 류의 상태로 돌아갈 게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두바이 땅을 닮습니까?

우리의 땅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굉장히 분명한 터가 있고요. 그리고 계곡이 있고 움직일 수 없는 무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건축할 방법은 가만히, 이 산새를 해치지 않고, 가만히 또 다른 무늬를 덧대는 겁니다. 이게 모이면 마을이 되어왔습니다. 이게 저는 소위 터에 새긴 무늬라고 주장을 해왔습니다. 터무늬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터무늬는 우리 존재 이유를 가리킵니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 존재나 이유를 터에서 찾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터무늬가 있다/없다하는 것은 존재를 설명하는 겁니다. 하이데거 훨씬 이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땅과 깊숙한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어왔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모든 땅은 자기가 어떤 건축이 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도시가 되고 싶어 하는지 말하고 있다고 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좋은 도시계획가, 좋은 건축가라면 그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바대로 새로운 무늬를 새로운 requirement를 새로운 시설로 얹어주면 그게 터무늬있는 건축이 됩니다. 우리가 지난 시대에 신도시들을 어떻게 지었습니까? 아파트들은 어떻게 지었습니까? 서양의 도시 계획을 빌려서, 평지 도시 이론을 빌려서, 평지의 마스터플랜을 빌려왔으니까 산에서 굉장히 거추장스러운, 산 있으면 깎고, 계곡 있으면 메우고, 물길있으면 돌려서 평지화시켜서 만듭니다. 축대라고 하는, 흔히 우리가 얘기하는 방법이었고, 그게 토건/토목사업, 토목/토건국가라고 하는 이름을 불러일으킨 게 우리의 산을 70% 넘는 산을 전부 다 깎는 것을 목표로 해서 평지화시키는 작업을 했던 게 토목 건축의 목표였습니다. 그 결과 터에 있는 무늬를 다 없애고 집 지은 결과가 터무늬없는 집들이었고, 주로 아파트들이 터무늬없는 삶을 사는 공간이 되어왔던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다시 출발해야할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되어집니다.

21세기가 되는 200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라고 하는 곳에서 세계 건축전을 여는데, 표어가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라고 하는 믿음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서양의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미학의 역사입니다. 비례, 스타일, 문양, 재료, 장식, 등등을 따진 역사가 서양 건축의 역사고 이게 어떻게 보면 도시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브제 중심이고 쳐다보는 광경의 중심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자연과, 나와, 가족과, 건축과, 우리와 꼭 관계를 따지는 윤리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서양 사람들은 이제 와서 자기가 가졌던 2천년의 역사를 부정하고, 미학이 아니고 윤리라고 하는 것을 선언하는 게 베니스 비엔날레의 표어였습니다. 많은 도시학자들이 20세기에 들면서 자기들이 가져왔던 도시의 관념을 성찰합니다. 도시라고 하는 것은 모뉴먼트에 있는게 아니라, 랜드마크에 있는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생활 속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서울에 살면서 서울타워에 가본 적이 1번밖에 없습니다. 서울숲은 아직까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그 랜드마크는 제 삶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저의 삶은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맞닥뜨리는 골목들의 풍경, 그 옆의 파출소, 동사무소, 유치원, 그리고 이웃집들 풍경이 제 삶을 지배합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도시의 진실이라 하는 것은 랜드마크에 있는게 아니라 일상의 풍경에 있다고 하는 것, 이게 이탈로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 도시라고 하는 책을 쓴 요지입니다. 도시의 범죄는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도시라고 하는 것은 미학보다는 이제는 서사, 이미지보다는 서사, ~ 도시 ~ 한 말입니다. 풍경 광경보다는 그 사이에 담겨진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고, 미학보다는 윤리, 이 사람 말에 따라서 베니스 비엔날레 표제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보다는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도시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기억 없이는 어떤 아름다움도 있을 수 없다고 아도르노는 이야기합니다. 이때 서양의 그 어떤 지성인들도 도시에 관한 관념을 바꾸라고 해서 이제 도시는 바꿔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도시가 리차드 시네트에 의하면 다원적 민주주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서로 다른 존재가 같이 모여 사는 방법, 이게 소위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래 전에 얘기한 신화 코스모스의 본체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하나의 모티브나 하나의 랜드마크, 하나의 주제가 있어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게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사는 이 방법이 민주주의적 도시의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도시 안의 사람들도 랜드마크가 중요한게 아니라 연대하는 네트워킹의 도시를 만들자고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혼자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도시를 만들자고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관계도 예와 굉장히 달라졌습니다. 요즘 sns,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서 ~ 사는 삶도 굉장히 늘어났습니다. 농촌과 도시, urban과 rural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ruban이라고 하는 단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몽땅 합해서 프랑수아 아셔라는 사람이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 메타폴리스라고 하는 이름의 책을~.. 이 책에서 정보 공유를 위해서 확장될 수 있다고 하는 개념이라서 여전히 서양사람이 갖고 있는 확장의 개념은 변하지 않아서 저는 이 단어에서 말을 땄지만 메타시티라는 말을 따서 메가시티의 반댓말로 썼습니다. 이 말은 도저히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계급도시가 아니라 인문도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삶에 기반한, 그 삶도 개인의 삶에, 개인의 존엄성에 기반한 도시가 인문도시고, 이 도시를 향해서 우리가 가는게 우리 도시건축의 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시 ~~ 일을 맡자마자 서울이란 도시의 정체성에 관해서 궁리해야 했고 5가지로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서울은 천만이 사는 도시고, 약 천년 이상의 도시고, 한 나라 수도로서 6백년 이상을 존속한 도시고, 무엇보다도 산과 계곡이 있는 도시고,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의 도시라고 하는 도시는 서울밖에 없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요소가 서울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요소고, 여기에서 기반해서 도시건축을 만들면 결국은 재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라고 하는 개념, 그리고 랜드마크가 아니라 연대라고 하는 것,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도시침술이라고 하는 개념, 그리고 완성이 아니라 주민을 참여시켜서 같이 나온 과정이라 하는 개념이 서울에 맞는 도시 전략이 아닙니까.

MERCER 컨설팅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삶의 질 1위인 도시는 비엔나입니다. 비엔나가 왜 줄곧 지난 10년 동안 삶의 질 1위일까 저는 뭐 유학도 했고 살기도 했기 때문에 꽤 잘 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비엔나는 근본적으로 보행도시입니다. 철저히 보행 위주의 도시입니다. 최근에 ~라고 하는 비엔나의 중앙역에서 도심을 잇는 2km 가까운 거리, 굉장히 중요한 간선도로인데, 여기 차량을 통행하지 못하면 난리가 날 법한 그런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거리를 전부 다 보행화를 시켜버렸습니다. 이외에도 끊임없이 보행화를 시키는게 비엔나의 도시정책입니다. 그러니까 공기가 맑아지고, 사람들 모여들죠, 공동지어 살죠. 그러니까 삶의 질이 1위인 도시가 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보행전용도로라고 하는게 비엔나는 사람만 하루 24시간 다니는 게 아닙니다. 서비스가 필요하니까 오전은 다니게 합니다. 오후는 전부 다 보행으로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면 서울도 보행전용도로 만들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참 이해를 못 하는게 청계천 왜 물을 만들어 놓고 자동차를 다니게 하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를 못합니다. 보행시키면 ~ 풍경이 달라집니다. 지금 보행하는게 그냥 좁은 통로 위에 사람이 위태위태하게 걸어갑니다. 물론 여러 공구상도 있고 상점도 있죠. 그러면 오전에만 차 다니게 만들고, 서비스하게 만들고, 오후에는 보행만 시키면 도시 풍경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달라질게 틀림없습니다. 보행중심도시가 상당히 많죠. 뉴욕이 대표적인 것 보행이 평면적입니다. 지표면에서만 보행이 됩니다. 런던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보다 런던이 굴곡이 있긴 하지만 런던도 철저히 지표면만 있고 보행중심 도시입니다. 토론토는 기후가 ~해서 지하에 보행로를 잘 구축하고 있습니다. 도쿄도 제가 지하철 ~ 보행이 상당부분 구축되어 있어서 지하에서 생활을 다 할 수 있죠. 홍콩은 좀 다릅니다. 홍콩은 산이 있으니까 지표면과 지상 부분 언덕이 많으니까 건물과 건물이 브릿지로 연결된 스카이워크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두 가지 레벨이 있습니다. 베이징은 보행할 수 없는 도로입니다. 블록이 커서 보행으로서 완전히 낙제점인 도시가 베이징입니다. 서울은 이런 맵을 보시면 다 그런 류의 도시 특징이 있는데 서울은 굉장히 다릅니다. 다른 류의 맵과 비교해보면 굉장히 다른 다양한 부분이 ~맵으로 표현되는 게 서울입니다. 서울은 왜 그럴까요? 서울은 보행의 기회가 산 때문에 결단코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서울은 4가지 레벨이 있습니다. 첫째는 물론 지표면으로 잘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이제는 지하도 엄청나게 많은 보행루트가 이미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하이워크도 만들 수 있죠. 더구나 산으로 가는 마운틴워크도 있어서 이 4가지가 지금까지 서울은 다 따로 놀았습니다. 이 4가지를 잘 결합시킨다면 세계에서 유래없는 그런 서울의 다이나믹한 보행루트를 만들 수 있는 게 서울입니다.

여기에 착안을 해서 첫 번째 서울역 고가보행공원화계획입니다. 사실 이것은 공원계획이 아닙니다. 보행계획입니다. 서울역에 의해서 이 주변 시설이 전부 다 파편적으로 단절되어있지 않습니까? 철도에 의해서 단절되고, 길에 의해서 단절되고, 이러한 큰 건물에 의해서 단절되어서 서울에서 남산까지가 불과 200미터밖에 안 되는데 서울역에서 내리면 갈 방법이 없습니다. 택시를 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데, 이렇게 자동차 통행 못하는 1.6km의 길을 보행화 시킨다면, 서울 철도 길을 넘어서 이 지역과 이 지역과 떨어져있는 파편적으로 되어있는 모든 시설을 다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하는 발견의 기인해서 이것을 보행 길로 만들기로 했던 겁니다. 서울시와 연구를 해보니까 17개로 이어져 묶는 길로 찾을 수 있었고, 대단히 ~ 서울연구원에 도움을 받아서 연락도 했던 것이 기억이 됩니다. 이 프로젝트를 ~? 공모?를 거쳐서 리마스터링 안을 뽑았는데, 애초에 안이 우리가 제안했던 보행루트보다 훨씬 더 많은 접촉루트를 찾아서 전체를 보행화 시키자고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대단히 아름다운 프로젝트였는데 이 하필이면 제목이 서울식물원/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제출하는 바람에 이것은 하나의 ~였는데 ~ 사람들이 이것을 잘못 인식해서 ‘공원을 만드는구나’, ‘무슨 공원이 뭐 이래’ 비난을 한껏 받았지만, 지금도 가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관람하러 오는 길이 아니라 일상의 한 공간의 부분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 성공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광화문광장 다 아시니까 설명하지 자세히는 않겠습니다. 다만 광화문광장의 불합리한 광장이 아니라 기념비적 공간, 목숨 걸고 가야만 하는 공간을 일상적인 광장, 광장 원래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서 드디어 ~공모를 통해서 안을 뽑아서 난관에 봉착해있습니다. 이 광장 성격이라고 하는 것은, 서울에는 광장이 있을 리가 없죠. ~과 같이 서양의 광장이라 하는 것은 평지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길을 먼저 만들고 직선을 만들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만들기 위해 광장을 만들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직선의 있을 수 없는 땅이니까 항상 길이라고 하는 것은 노새가 다녀야 하는 구불구불합니다. 구불구불한 것이 어떤 곳은 넓혀지고 좁혀지고 광장 역할 한 것이, 우리 전통적인 도시에서 광장이 없습니다. 다만 ~라 하는 것은 이 넓은 도로여서 광장 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 ~ 하는 것은 서울시에서도 가장 중요한 상징적이지만, 대한민국에서도 굉장히 상징적 공간으로 되어있어서 마치 무슨 광장이 아니라 북악산에 있는 권력, 권력 영역과 민중이 사용하는 역영역과 대결되는 구도의 지세를 갖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 번 모이면 데모를 해도 북악산을 향해서 데모합니다. 내려가려고 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이런 류의 형태가 여기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형태입니다. 이 축은 권력과 민중, 권력과 비권력의 대결의 장, 이 대결의 장을 종식시키지 않으면 우리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고 저는 굳게 믿어서, 여기에서 청와대보고 비켜달라고 꾸준히 요구를 했고, 이 정부에서 비켜주겠다고 얘기를 했던 겁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경복궁을 지나서, 청와대를 지나서, 북악산까지, 사람들 모여서 수시로, 일상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이 풍경이 되면, 대한민국의 권력 대결의 축을 완전히 시민의 축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이게 민중 시대의 모습이 아닌가 시작해서 시작한 프로젝트고, 그래서 항시적으로 사람들이 기념비적으로 모이는게 아니라 항시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해서 항시적으로 차량의 통행, 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이런 류의 공간을 만들었던 겁니다. 사실은 논란이 되고 있는 차량을 어떻게 돌리고 말 것인가 하는 것은, 사실 차량은 통행을 안 시키면 전체가 광장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때는 종국?에는, 저는 서대문 안에서 차량통행을 금지 시키는게 맞다고 주장하는데, 언젠가는 전체가 보행중심의 공간으로 되면 차가 다 사라지면 그렇게 될 수 있어서 설계팀에다가 같은 재료?로 마감시켜 달라고 있는 요구해서 설계를 준비하고 있는 ~입니다. 어떤 입장에서 차량을 지하로 돌게 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 있는 지하철 라인이 3개가 돌고 있는게 그것을 옮기기도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사실은 보행과 차량을 분리해서 하는 것은 전시대적 방법입니다. 차량은 차량대로 속도를 많이 낼 수밖에 없어서 공해를 유발하게 되고, 결국 그 차량은 또 다시 막히게 되는 그런 경험했던 우리가 전시대적 도시의 차량과 보행의 분리 정책의 결과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결과 차량 쫓아내면, 내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 주변의 난관에 봉착해있습니다.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104마을 프로젝트인데 지금 거의 10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 쯤에 104마을이 재개발 아파트단지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가 격렬하게 항의를 해서 겨우 주거지 보존지역으로 정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는데, 지난 10년 동안 기존 주민들과 재개발 업자들 사이에서 아주 진통을 겪고 있다가 최근에 다 정리가 되어서 이제 아마 본격적인 실행의 단계로 들어가 있는 도시입니다. 마지막 달동네고요. 1000세대가 60년대 이후부터 형성되어 있고요. 열악하지만 자연의 질서를 담아서 전체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진행이 되어왔는데, 우리는 한 번만 좋은 예를 만들면 다 따라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터무늬없는 아파트 대신에 어떤 다른 공동체를 만들까 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적 기반해서 역사를 다루는 기관에서 제안한 역사마을 보존 원칙에 관한 문서를 다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게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형을 해치지 말라. 그리고 ~ 훼손하지 말라 ~라는 겁니다. 그리고 길들을 바꾸지 말라는 것이고, 사는 방법을 가급적이면 유지시키라고 하는 겁니다. 이 4가지 방법만 볼 줄 알면 건축은 어떻게 해도 괜찮습니다. 역사마을 보전이 된다고 하는 겁니다. 4가지를 철저히 지키는 게 이 104마을의 새로운 ~습니다. 도로가 아무리 가팔라도 보존하고요, 터도 다 보존하고, 터 크기를 보존하는 것~~습니다. 지형 보존하고, 공유마을 통해서 이 마을 사는 사람들 보존합니다. 5년 이내에 전체 모습이 완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목표를 가지고 만든다면 우리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이 틀려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는 사진입니다. 1986년에 하르부르크라는 함부르크의 ~에서 ~ 세워졌습니다. 11미터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게 매년 2m씩 땅으로 꺼집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파시스트 나치에 당했던 슬픔, 고통을 써달라고 하는 글이 있었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나치와 파시스트 당했던 슬픔, 분노, 원망, 고통에 관한 기억들을 써내려갑니다. 탑의 표면에 이렇게 낙서처럼 덮여서, 매년 2m씩 땅으로 꺼지다가 1993년에 완벽하게 사라졌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그 지붕만 남아있습니다. 탑을 설계한 사람이 이야기하기를, 우리의 불우에 대항하는 것은 인공적인 시설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여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얼마 전에 이 시설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건축은 이렇게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세운자의 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있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가 어떤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야 될까 ~생각됩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