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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글쓰기 특강 제5강 김영하의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가”

등록일: 
2015.07.21
조회수: 
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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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구원은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글쓰기 특강 <읽기 쓰기 말하기>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5번째 강의로 4월 29일 서울연구원 대회의실에서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가”편이 열렸습니다. 이날 강의에서 김영하 작가는 소설과 문학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글쓰기 특강 강의자가 강의하는 모습이 약간씩 다르게 세장의 사진에 붙여져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어투로 강의의 일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오늘 강의 주제도 이와 관련된 것이죠. 


이야기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주제나 교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소설에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 있고, 사람마다도 중심이 달라서 똑같은 소설을 읽어도 그 중심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혹 도달하였다 하더라도 지점이 다릅니다. 우리는 불변하는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목표인 양 읽으면서 정답이 뭘까, 여기서 뭘 느껴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흥미를 잃게 되죠. 어떤 아이가 소설을 읽습니다. 아이가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엄마가 나타나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뭘 느꼈니?’ 혹은 ‘주제가 뭐니?’ 아이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지만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뭘 느꼈는지 물어보면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소설에서 주제 찾기가 어려운데다 부모님들의 조급함 때문에 아이는 뭘 느끼긴 했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를 것입니다. 글을 읽는 동안 아이는 낯선 세계에서 헤매면서 자기가 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슬픔도 느끼고 기쁨도 느끼는 등 수많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엄마가 뭘 느꼈냐고 물어보면 아이는 당혹스럽겠죠. 아이 잘못이 아니라 원래 소설 읽은 직후에도 그렇고 한참 지난 후에도 소설의 주제나 메시지, 교훈 같은 것을 바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이 그것을 교묘하게 감춰놓았기 때문이죠. 전 소설이 잘 설계된 정신적 테마파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서 잘 설계된 미로들을 헤매는 거예요. 미로가 사람들마다 다르게 다가오겠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강의실의 전체적인 전경을 찍은 사진입니다.
 

문학의 세계에 발을 디뎌놓으면 그 안에서 우리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밀란 쿤데라는 이를 ‘소설은 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고 말합니다. 소설의 세계로 넘어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살인자가 나오든 불륜을 저지르든 소설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굉장히 참을성 있는 사람이 돼요. 그러다가 현실로 넘어오면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시작합니다. 여기는 냉엄한 도덕적 판단이 존재하는 땅이에요. 현실에서는 부도덕한 일을 한다거나 어리석은 일을 조금만 해도 사회로부터 배제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죠. 그런 일을 겪은 인물의 속내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숨 막힐 것 같은 냉엄한 윤리적 압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윤리적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비효율적으로 행동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면 치명적으로 됩니다. 이게 현실이죠.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조심하면서 살아갑니다. 소설을 몰래 읽으면서 다들 살아가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야기의 세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야기 속에는 인격적인 결함을 갖고 있든 범죄자든 욕망에 굴복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간에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그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들이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문학 소설은 인간이 평소에는 겪지 않는 일들, 특히 욕망이라든가 불가항력적인 충동에 굴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읽도록 되어 있어요. 


문학의 세계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부모들이 새삼스럽게 문학을 읽어보면 ‘왜 이렇게 어둡지….’라고 당황스러워 하죠.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여서 밝고 명랑한 이야기일 거라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들이 갖는 당혹감을 이해합니다. 그들은 이야기 세계를 오래 떠나 있었기 때문에 동화는 밝고 아름다운 것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이야기의 본성상 어두운 것이 많고 위기와 재난,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을까?’라는 질문에 타인을 이해하거나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자기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렇게 결함으로 가득 찬 인물들의 이야기를 며칠, 몇 주 동안 읽는 거죠. 이게 소설이 이상하다고 말씀드렸던 이유입니다. 이런 이상한 세계를 평소에 경험할 일이 없으니까요.
 

강의자를 포함한 네명이 의자에 둘러앉아서 담소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보자면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에게 벌어질 일을 대신 경험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소설을 비롯한 모든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그런 감정을 느끼려면 갈등이나 위기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위기와 갈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몇 천 년 동안 사랑해 왔어요. 이야기란 이런 것입니다. 우리 삶에 평온한 균형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패턴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의 특징 중 하나가 고아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고아 이야기 다음으로 정체성 혼란 같은 좀 더 어려운 문제들을 건드리죠. 순차적인 방식으로 이야기 단계가 넘어갑니다. 인간은 단계마다 자기가 상정할 수 있는 두려움과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한 시기에 어떤 이야기를 읽을 것인가는 자기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야기 산업은 지금도 급팽창 중입니다. 이야기산업은 그 규모가 줄어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계속해서 헐리우드는 작가 구인난으로 난리라고 합니다. TV채널이라든가 IP채널에서 판권들을 사들이고 넷플릭스(Netflix) 경우는 다른 나라 콘텐츠들을 수입하면서도 자체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니까요. 
이야기를 사랑하는 인간의 속성은 앞으로도 더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줄어들진 않을 거 같아요. 물론 소설을 사람들이 읽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 자체를 사랑하는 우리의 지혜랄까요, 이런 것들은 계속해서 전승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영하 작가의 강의자료 전체는 파일로 정리하여 첨부하였습니다.